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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의 색상

eesem 2010. 4. 19. 15:44
2005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골드스미쓰에서는 학기끝나고 과제전을 제법 격식을 갖춰서 하곤 했다.
좁은 벽에 작품을 몰아넣으면 주의산만해지기 때문에 정해진 공간에 적당한 크기의 작품을 배치시키고, 그 작품들을 어떤 높이로 동선으로 레이아웃 하느냐를 큐레이팅과 애들과 논의하는 등의 절차를 밟고, pv(private view)라고 하는 오프닝카드를 만들어 배포하고 오프닝 음식과 와인을 준비했다. 이 모든 과정은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운 마틴 콘스타블이라고 하는 주임선생에 의해 감독되었다.

비록 학교내의 스튜디오 공간을 비우고 벽을 보수하고 흰칠해 만드는 전시공간이지만 흰색은 모든 것을 경건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듯 평소와 전혀 달라보였다. 나는 작업물 중의 하나인 책을 벽에 걸려고 못 하나를 박았고 왠지 이 못이 튀는 것 같아서 흰색 페인트를 칠했다.
그때 마틴이 이것을 보고 누가 못을 칠했냐면서 손가락으로 내가 한 칠을 쓱 지우며 화를냈다. "뭔가를 덮어씌워서 어떤 재료를 그 재료가 아닌 것처럼 감추고 가장하지 말라." 는 요지의 잔소리. 오히려 더 튀고 싸구려같아 보인다고, 못을 못으로 드러내라는 말씀.

별거 아닌 이 얘기가 집 실내공사를 하는 지금 엉뚱하게 가끔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