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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잘됐어, 그리고 절망

eesem 2010. 2. 5. 16:00
집을 지을때 아빠는 주위에서 워낙 집짓다가 암걸리고 집 주인이 죽고 미망인이 홀로 큰 집을 지키며 살거나 빈집이 되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셔서, 정신건강을 지키는 것에 큰 비중을 두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그중에 하나는 이미 어쩔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법이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이것을 바꿀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그 일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컴퓨터로 일하는 것이 익숙하고, 대부분의 문제는 콘트롤 제트로 해결할 수 있었던 나에게도, 공사 도중에 어떤 한가지 실수가 발생하면 되돌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물질과 시간의 손실이 생기고 대부분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다. 

집을 짓는 도중 어떤 알수 없는 문제로 인해 내부 인테리어까지 완료된 상태의 집의 2층부터 옥상까지의 한 벽면 부분을 조각케익처럼 삼각으로 잘라내야 할 대형사건이 생겼다. 창호며 단열 외장 내장 공사를 다시 해야하는 상황으로 그 손실이 엄청났고 어떻게 봐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식구들 모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집을 잘라내고 마무리한 후에 아빠는 잘라낸 부위를 바라보며 "그래, 그 전에는 저쪽 면이 밋밋하니 심심했는데 면분할이 잘됐네. 오히려 잘됐어." 필사적이었다. "응, 오히려 잘됐네" 나도 동의했다.



아빠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하려는 의지때문에 "오히려 잘됐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런 아빠에게도 절망은 쉽고 사소하게 찾아온다.

예를들어 이런것.
얼마전에 인터넷전화를 놓으면서 중앙케이블에서 무료로 설치해둔 전화기의 디자인을보고 아빠는 말없이 그러나 마음속 깊이 절망한 것이다. 아마 이런 마음이었던것 같다. '멋지게 새 단장하려고 하고있는 집에 저렇게 무심한듯 구린 전화기가 중요한 자리에 놓여있다니..절망이다' 와 '우리나라의 디자인 수준이 고작 이정도란 말인가, 절망이다.' 라는 마음. 아빠가 엊그제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전화기를 보고 속으로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 며 털어놓은 이야기.

나는 무료로 들어온 못생긴 전화기같은것에는 대범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