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불확신과 싸우고 있구나.

장소를 옮긴다는 것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져다 줄것인가?

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기회가 생겨나는 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 하는 불안이 있지만

그 기회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도 있다. 

어째서 나는 뭔가가 생성되려고 하는 이시점에서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합당한 대답은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없고 그곳에서 할수 있는 일을 하기위해서.



Posted by eesem :

할수있을까? 

걱정이 몰려온다.

내가 할수 있는것을 하는 것일까?

이것이 나의 생각과 언어가 맞는 것일까?

무리하게 내가 할수 없거나 할 필요 없는 것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일까?


걱정과 두려움과 싸워 이겨야 한다. 

아직 나의 정체가 확실치 않은 작업을 만들어가는 것은, 모래사장에 묻힌 뭔가를 발굴하듯이 모래를 조금씩 쓸어내야 그 정체가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를 판단하는 암묵적인 여러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좋겠다.

처음 생각했을때는 분명이 재밌고 좋은 생각이었다고 느꼈던 것이, 며칠후 생각해보면 도저히 어리석고 미친 생각 같다. 

때로는 이런것들을 꾸준히 밀고나가면 예상치못한 괜찮은 결과를 얻는데, 이번에 그럴수 있을까.

연결되지 않는 여러개의 아이디어들이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6월 중순 전에 다 끝내야 할텐데.


Posted by eesem :

최근 핸드폰의 메모장에 글을 적는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노트에 글쓰기를 하고있는 중인데, 역시 일기정도나 써야지 필기는 안되겠다. 내가 쓰고도 알아볼수가 없어서 해독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심지어 아무리봐도 해독불가한 것들도 태반이다.

이 무슨 시간낭비인가.


게을러지면 안된다. 생각하기를 멈추어서는 안된다.



해독할수 없는 노트에서 눈을 부릅뜨고 발췌.거의 절반 이상은 알아볼수 없었다.


예술은 기술인데, 이루지 못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기술이다.

사람 자신은 뒤로 물러섬으로써 자신이 가진 정신세계의 윤곽이 드러난다.

예술이 자기자리에서 물러난다.

물러남으로써 어떤 희미한 형태.

예술이 유일한 단 하나의 개념을 갖는다.

예술-> 언어-> 뜻

의미전환의 문제.

확실한 의미를 전달하는것도 아니다.


저항과 침묵 동의어

부정의 철학


침묵은 소란스러운 삶과 같은것

모든 예술은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침묵적인 것은 아니다.

소음 - 침묵을 통해 주위가 드러난다, 듣기의 수용성, 도시의 소리를 증폭시켜서 듣기.

침묵도 하나의 언어이며 발화행위이다

침묵은 만남의 장소이다.

존재는 침묵이다, 언어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서구전통에서는 토론끝에 도달하고자 하는것이 침묵이다.

실란투라투스 - 로마시대 공무원 - 국왕이 도착하면 침묵이 흐르게 한다. 국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침묵이 존재한다.

침묵 - 도달점이다








요새 좋아하는것.

꽃을 이용한 보색/ 대비색 놀이


Posted by eesem :

어떤 생각들은 종이노트에 적고 어떤 이미지들은 페이스북에, 어떤 사진들은 카스토리에, 나도 알수는 없지만 왠지 확고한 무의식적인 기준에따라 채널이 달라지고 있어서 글과 이미지가 한곳에 모이지 않는다. 어쨋거나 긴글과 매우 사적인 글은 이곳에 쓰기로 한다.


밀회의 김희애처럼 기름지게 나온 얼굴이지만. 사진속에 저 날의 비장했던 기분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듯하다. 

개인적인 실패로인해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고있는 평범한듯한 일상의 행복은 엄청난 투쟁과 고군분투로 이루어져있음을 깨닫고 있었는데. 

많은 이들이 어처구니없이 눈앞에서 수몰되는 상황이 생중계되는 재난상황속에서 사람들의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고 있는 그 사건을 거울삼아 얻은 깨달음이나 감상적인 표현을하는 것마저 어떤 죄책감을 느껴지던 2-3일 후였다. 



정치와 역사를 다루고 있는 이 전시-공연에서는 각 나라의 역사적 사진자료들과 햄릿기계 텍스트에서 발췌한 단어들을 연결시키는 사진을 찍고 전시하며, 정해진 시간에 공연이 있었다. 이 공연이라는 것을 놓쳐서 다음날 다시 방문했는데. 뉴스에 나온 배가 가라앉아가며 뱃머리만 노출된 사진을 스크린에 프로젝션하고, 배우들이 수조에 수도꼭지를 틀고 물을 받으며 수조에 들어가서 물이 넘치는 안에서 몸부림친다거나, 젖은옷을 입고 나와서 울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구조와 생존의 희망을 대부분 가지고있던 시기라서 배우나 제작진의 슬프고 진심어렸을 의도와 정중한 멘트에도 불구하고 충격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대구 지하철 참사때 사람들이 한푼두푼 모아서 낸 성금 8억 5천만원으로는 이러한 추모와 안전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지어졌다고 한다.  


이 조형물은 유족에게는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위로하는 '추모탑'이지만 시민에게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합과 단결로 가는 '지혜의 탑', 기업가와 공무원에게는 책임 경영과 행정을 다짐하게 하는 '거울 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의 마음 의도 그리고 그 표현행위가 좀더 적절하게 연결될수는 없었던 것일까.

어째서 사건 그자체, 그리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 표현결과는 이렇게 제각각 아무런 상관이 없는걸까. 


http://www.yonhapnews.co.kr/local/2009/12/26/0803000000AKR20091226036100053.HTML





그런가하면 오히려 정치인들이 '정치미술'이라는 신 장르를 개척하며 컨템포러리아트의 선두를 달리고있다.

작가들이 뛰어넘을수 없는 규모로 이런 제도를 활용하여 제도비판을 하는 허를 찌르는 역설을 보여주는 토론퍼포먼스 작업.

올해의 작가상은 이분들에게로.

더이상 일상과 제도의 미술적 차용의 의미를 찾을수가 없을 정도이다. 


지난주에 어떤 작가님이. 요즘에는 세상이 너무 삐뚤어서 오히려 예술가가 똑바로 살아야하고 그렇게 사는것이 예술이되었다고 얘기하셨다.

예술의 역할과 나의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세상에서 일신의 안위를 보전하는 것 외에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살수 있을까.







Posted by eesem :

역시 연애가 끝난후에 블로그를 되살리자 자신에게 골몰하며 열혈 집필하고 있다.

t의 질문은 "누구 사랑했던 순간이 사는데 힘이 되어주나?" 였다. 영화나 드라마같은데 그런 말들이 있다며.


지난 사랑의 기억이 소급되어 적용되어서 지금의 나에게 힘이 되어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지 나에게 그런면도 있었구나 나에게 그런 감정도 있었구나 하는 그사람을 만나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발견된 부분들.

생각의 변화나 깨달음. 서로가 어쩔수 없었던 지난 시간의 솔직했던 감정과 노력에 대한 고마움과 따뜻함이 남는것 같다.


나는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만남들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기치고, 배신하고, 증오하고, 저주하는 그런 헤어짐은 없었다.

나무에서 열매가 익어서 똑 떨어지듯이 그 수명을 다해서 끝난 연애.

다음에 마주치면 친구는 못되더라도 웃으며 인사할수 있기를 바란다.


Posted by eese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