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영화를 나올때마나 슬쩍 챙겨보고 있는 것은 길티 플레져에 가까운. 보고나서 주변인들과(주로t) 욕하면서 낄낄거리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같은 중독성. 밤과낮을 보고 t가 보여준 출처를 모르는 감독 본인이 썼을법한 글을 옮겨본다.
영화평이나 신문기사들은 '작가주의 감독의 여유'이라느니 '감독과 배우간의 위대한 감응' 이라느니 읽다보면 왠지모르게 창피하거나 언짢아질때가 없지않은데 인터뷰나 본인이 직접 쓴 글은 담백하고 직설적이어서 좋다.
밤과낮에서 주인공 때문에 6번이나 낙태를 했다는 주인공 예전애인의 자살소식이 들리자 주인공은 자기감정에 빠져 꺼이꺼이 울고, 멀리있는 아내와 통화를 하고난후에, 다음날에는 아이유 글래머버젼의 어린여자를 따라다니고 결과적으로 그녀도 임신시키는 위기에 처한다. 아마 이창동감독이라면 이것을 여성의 자살을 주제로 치열하고 진지하게 '시'같은 영화를 한편 만들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상수는 인생의 비열한 어떤 부분을 웃음으로 눙치며 '안 그런체 해도 다들 그렇게 살지않나' 하고 비웃고 지나가며 이창동은 '왜들 그렇게 살아야하는데?' 싸우는 느낌. 홍상수는 영화만드는게 과장하면 즐거워서 견딜수가 없고, 이창동은 고통스러워서 가급적 안만들수 있으면 안만들고 싶다던 인터뷰가 떠오른다.
둘다 좋다.
이창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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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그런가요?
“영화 역시 그렇죠. 분명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해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영화도 시처럼 갈수록 더 혼란스러워지거나 갑갑해집니까.
“갈수록 그래요. 오락을 주겠다는 목표의식을 분명히 하면 좀 덜 할 텐데, 뭔가 소통하고또 발언하려고 하면 점점 힘들어지는 거죠.”
-이제까지 만드신 작품들 중에서 ‘시’는 상대적으로 잘 풀렸던 영화입니까.
“아니에요. 무척 힘들었어요.”
-그럼 이제껏 상대적으로 가장 잘 풀렸던 작품은 어떤 건가요.
“잘 풀렸던 영화가 제겐 하나도 없었어요.”
-그럼 항상 최악의 상태로 힘드셨던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워스트 다음에 또 워스트가 계속 되는 것 같다고 할까요.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시’를 만들 때 그런 얘기를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에게 얘기한 적도 있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또 저런다’라고 하나요, 아니면 ‘정말 큰일났다’라고 합니까.(웃음)
“반반씩이죠.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후자의 반응을 보인 사람이절반 좀 안될 것 같긴 하네요.(웃음) 문제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인데, 정말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스트레스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시’에서 미자는 스스로 시인 기질이 있다고 농담조로 말합니다. 감독님은 어떠신가요. 감독 기질이 있다고 보십니까.
“없어요. 그래서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들어요. 기본적으로 감독은 촬영을 즐겨야 합니다. 제가 아는 감독들은 대부분 촬영장에 갈 때 소풍을 가듯 즐겨요. 홍상수 감독 같은 사람은 안 찍으면 못 견디니까 계속 찍는 거에요. 그런데 저는 촬영장에 가는 게 흡사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은 사람이거든요. 그런 사람이 무슨 영화를 찍겠어요. 사람은 즐길 수 있는 걸 해야 되는데 말이에요. 이번에도 최종 단계에서 음악 만든 것을 다 빼는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그런 일이 생길 때면 괴로워요. 그런데 현장에선늘 그래야 되거든요. 괴로워하면서도 하려니, 정말 괴로워요.(웃음)”
-‘시’에서 미자는 왜 시를 배우냐는 질문에 대해 ‘그러게요. 내가 왜 시를 배울까요?’라고 남 얘기하듯 반문합니다. 그렇게 괴로우신데, 감독님은 왜 영화를 하십니까.(웃음)
“그러게요. 내가 왜 영화를 할까요?’(웃음)”
-꼭 미자처럼 말씀하시는군요.(웃음)
“미자라는 인물이 괜히 나왔겠어요?(웃음) 시간이 흐르면 영화를 만들면서 너무나 힘들었던 상황에 대해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연애와도 비슷한 듯해요. 실연을 겪으면 울고불고 하지만, 결국 다시 또 사랑을 하게 되잖아요.”
-그렇다면 ‘시’를 세상에 내놓으시면서 자부할만한 게 있다면 어떤 걸까요.
“그런 건 없어요.”
-그렇게 대답하실 줄 알았습니다.(웃음)
“곰곰 따져보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잘 모르겠어요. 내가 병들어 가는 것 같아요. 왜 좋은 게 안 보일까.”
-3년 전 ‘밀양’으로 감독님을 인터뷰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예전에 영화 연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딱 다섯 편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때 생각으로 보면 이제 한 편 남은 거죠.’ 이제 다섯번째 작품인 ‘시’까지 만드셨습니다. 설마 더 이상 안 만드시는 것은 아니겠죠?
“우선 ‘시’가 어떻게 되는지부터 봐야겠죠.”
-우문현답이시네요.(웃음)
“망해서 더 이상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르죠.”
-설사 그런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만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그래도 뭐 어떻게 한 두 편은 더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얼마나 개과천선을 하느냐의 문제가 되겠죠.(웃음)”
-먼 미래에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가장 바람직한 것은 누가 못하게 해도 제가 그냥 찍는 거에요. 찍을 수 있거든요. 제작비를 대폭 줄여서요. 영화란 것이 별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저를 스스로 돌아보면 제게 그런 열정이 있을까 싶어요. 그런 상황이 오면 아마 접겠죠. 저는 큰 미련이 없어요. 애착이 그다지 큰 것 같지 않아요. 촬영을 나가지 않는다고 좀이 쑤시고 그렇진 않거든요. 시골에 가서 햇빛 쬐면서 사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뒷동산에도 올라가고, 좋을 듯해요. 제 고향은 안동이지만, 꼭 고향에 가지 않아도 돼요.”
출처1출처2
홍상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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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좋아하던 사람들 중에서 유독 프랑스랑 관련이 있는 사람이 많더라. 한국 정착하기 전에 한번 구경하고 싶은 마음,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마침 아는 분 친구인 여자 화가의 파리 집에 꼭대기층 방이 하나 비었다기에 무작정 갔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1년 있게 된 거지. 정말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산 건 처음이었다. (웃음) 크루아상 먹을 돈도 없어서 바게트만 먹고. 사람들은 내가 파리에서 시네마테크 다녔다고들 하던데 그게 대체 무슨 소린지. 돈이 없어서 그런 데는 잘 못 갔다. 게다가 불어를 못해서 프랑스영화가 아니라 옛날 미국영화만 보러 다녔다. (웃음) 나중에는 집사람이 합류해서 애 보는 일도 하고….
자기는 어떤 여자랑 사랑에 빠지면 이유가 있어서 사랑에 빠지나? 김영호가 그냥 맞겠다는 생각이 든거지 뭐. 배우를 추천받는데 허문영 PD가 김영호를 추천하더라. 그리고 두번 만났을 때 같이 일하기로 결정했다. 캐스팅 연유를 말로 해봐야 한심하기 짝이 없지. 몇 마디 말을 만들라면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복잡한 센스가 작용하는 거잖아. 악수할 때 손의 느낌, 인사 때 눈빛, 특이한 말투, 어떤 주제에 대한 이 사람의 반응 등등 수없이 많은 것들이 만남 속에서 보이잖아. 아주 막연하고 직관적인 거 같다.
완전한 구원은 아니지. 집으로 돌아와서 제자리를 잡는 정도의 구원이라고 할까. 활활 타오르는 로맨스로 인생을 뒤바꿀 게 아니라면 그건 구원이 아니라 ‘구조’ 정도가 아닐까. (보도자료를 쳐다보며) 말은 위험해. 말은.
기본적으로 인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 그 근거로서 어떤 태도가 내게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이러려니 믿고 싶은 이상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와 상관없는 우리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한순간도 상징이나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게 또 진짜라고 믿는 것도 위험한 거다. 흩어지는 조각들을 부둥켜안고 있는 사람들이란 걸 한편으로 잊지 않고 가는 게 건강한 것 같다. 그렇게 된다고 비참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진짜 가슴 쫙 펴지는 시원함 같은 게 오고 앞에 사람 덜 괴롭히는 인간이 되기도 쉬워진다. 남들은 내 영화가 어둡다는데 나는 만들 때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당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내 영화를 보고 “저거 왜 저래?” 혐오스러워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은 당위 덕에 비위가 못쓰게 나빠진 거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의 몇배는 더 비위 상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삶의 사실들을 이상한 걸로 치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이데올로기들에 휘둘리지 않고 앞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격이 획득된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비위가 약해져서 웬만한 것에도 깜짝 놀라고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아예 상상조차 못하게 돼서 허구적인 이데올로기 손아귀 안에 꼼짝도 못하고 잡혀 살다 죽는 꼴이다. 나올 엄두를 못 내는 거다. 한발만 내어놓으면 속이 메스껍고 심장이 답답해지고, 온갖 신체적인 반응이 일어나니깐. 그것을 통해 그들이 보라는 것만 편하게 바라보고 그 나머지 우리가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인정해야 할 부분은 백안시하고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런 잣대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 눈에는 앞에 존재하는 대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잔인하고 비경제적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말은 많이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실제로 중요한 문제에서는 자신 속에 심어진 관습적인 반응에 질문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런 억압을 깨겠다고 다른 대안 이데올로기로 튀지도, 새로 만들지도 말아야 한다. 그냥 지금 그 이데올로기의 허구성만 깊이 쳐다보고 느끼면 된다. 그래서 내가 필요한 만큼의 자유를 얻고 덜 힘들어지고 그 사람한테 덜 나쁜 사람이 되면 된다. 완전한 인간은 없다. 우린 결국은 대부분의 시간은 남의 이데올로기와 이미지와 수사 속에 매여서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면서 낭비적으로 살 것이다. 하지만 자기를 너무나 힘들게 하는 몇개의 문제에서만이라도 꼭 제대로 싸울 필요가 절대로 있다.
예전에 내 영화를 두고 현미경으로 인간을 관찰하듯… 뭐 그런 표현도 있었다. (웃음) 사실 길게 관찰하질 않는다. 누군가를 봤을 때 떠오르는 생각, 내 속에서 나오는 편견, 반응, 감정, 그게 딱 나오고 나면 더이상 그 사람을 보는 게 아니다. 내 속에 있는 감정들이 어떻게 해서 자리잡게 됐나, 나를 어떻게 지배하게 됐나로 관심을 돌린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턴가 조금씩 명료하게 내 속의 억압 기제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편해진 눈으로 바깥을 다시 보면 그때 다른 게 보인다. 온전하다…? 예전보단 상대방의 원래 생김새에, 원래 실체에 좀더 근접해서 보게끔 되는 변화를 느낀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강원도의 힘>이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극장전>에도 죽음이 있었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느낌이 다르다면, 나에 대해 알게 되면서 오는 편안함이 톤을 바꾸게 한 거 아닐까 싶다.
신문 하단에 실린 어떤 책 소개를 읽은 적이 있다.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중국 근대사에서 유명했던 어떤 인물이 무척 친했던 친구인지 친척인지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날 이후로 안 만났다는 짧은 내용이었다. 왜 그랬는지 설명이 없었다. 책 제목도 모르고 인물 이름도 모르는데, 그 설명만 머릿속에 남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연결이 되더라. 그런 식으로 구성됐다.
그게 우리 실제 꿈이지. 깨어 있는 시간과 꿈속의 현실을 논리적으로 연관시켜보려고들 하는데, 그건 무리인 거 같다. 꿈이 왜 그렇게 형성되는지 알 수 없다. 꿈을 꿀 땐 크게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숨을 쉬고 뇌를 통해서 감정까지 느끼고 그 나름의 논리가 존재하는 거잖아. 그건 다른 삶이다. 이 세계에선 하나만 놓고 이쪽만 보라고 만날 닳도록 돌리니까, 스스로 꿈을 통해 그렇게 다른 세상을 만들면서 해소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꿈이 재밌다.
특별한 날 아니라면 대개 한 시간 정도 쓰는데, 참 좋다. 더이상 도망갈 수 없고, 거기에서 오는 포기 때문에 느끼는 조용함이 있다. (웃음) 그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전에는 시나리오를 혼자 다 쓴 다음 조금씩 고치기도 해봤는데, 이젠 그냥 준비를 어느 정도 하면서 그 과정에서 계속 생각하고, 메모도 하고, 촬영도 점차 진행되고, 그전에 찍었던 장면들이 나한테 쌓여 있으니까, 그 정도 시간이면 되는 거 같더라. 이게 기질인 거 같아, 기질. 대사를 쓰고 나서 프린트해서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나눠준 다음, 이삼십분 정도 뒤에 모여서 처음 다같이 읽는 그 순간이 너무 재밌다. 배우들도 결국엔 재밌어하는 것 같다. 안 쓰던 근육을 마사지받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마지막 문숙의 웃음은 정말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뒤에 지어보이는 웃음을 의도했다. 내가 전에 그랬던 적이 있다. 지하철 안에서 어떤 여자가 내 팔을 갑자기 때리는 것이었다. 애 업은 아주머니였는데, 내 팔에 모기가 붙어 있었던 거다. 그 여자는 죄송하다고 했고 실제로 남의 팔을 치는 행위가 실례라는 생각도 했겠지만, 그 이전에 모기가 남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걸 보고 있기가 힘들었던 거다. 그만큼 남에 대한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 받은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그걸 떠올리면서 썼다. 하지만 사실 밝은 이야기도 아닌데. 남자 속이라는 게 그렇게 드러나고, 여자도 어떤 면에선 비슷하고. 밝게 하겠다, 어둡게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한 건 아니다. 처음엔 남자 중심으로 끝까지 갈까 하다가, 중간에 여자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늙는 게 좋다. 몸이 변해가는 게 좋다. 눈에 노안이 오고, 이런 게 재밌다. 나는 의도를 못 믿으니까. 하지만 몸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확실한 게 없는 삶에서 늙으면서 오는 신체 변화는 확실하지 않은가. 어릴 때 신 김치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갓 담근 김치가 맛있어졌다. 내가 의도한 게 아닌데, 확실한 변화가 생긴 거다. 이런 게 재밌다.
어렸을 때부터 어울리다보면 사람들이 항상 치사하다고 느껴졌어요. 몰려다니면서 편 짜고, 틀린 거 알면서도 (상대를) 누르고, 자신에 대해서 모르면서 남들을 비난하고. 사람들 만나서 적응이 안 된 것도 그런 것 때문이기도 한데. 하여간 좀 사람들이 실망스러웠던 것 같아요. 친하고 싶고 교류하고 싶은 건 있는데 어떤 건 용납이 안 되고 거슬리고 그러니까 가까이 못 가는 거죠. 지금 나이가 들어서 봐도 그래요. 제가 비위가 좀 생기고, 제 자신이 그 사람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다고 느끼니까 전보다 낫지만.
잘난 사람 TV에서 틀어주고, 그 사람 본받게 하려고 하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전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걸 흉내내는 데 한계가 있고, 또 성공한 사람을 가까이 가서 보면 성공 요소라는 게 제 속에 없고. 그러니까 모델이 되는 게 아니라 방해가 되더라고요. 대신 자기를 자꾸 보는 거, 있는 그대로 얼마만큼 자기를 볼 수 있느냐가 진짜 개성을 찾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서도 영웅을 자꾸 보여주잖아요. 과장이랄까 단순화랄까, 미화랄까. 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니까 그런 인물을 만들기가 싫은 거예요. 나도 그런 영화들도 보고 감동받고 그랬겠지만. 영웅에 반대되는 반영웅을 그리는 것도 도식 같고.
그럼 뭘 그려야 하나. 사람들이 익숙해하는 건 전형적인 인간이고, 가능하면 긍정적이어야 하고, 또 메시지가 행동을 통해 명확하게 전달되길 원해요. 제 생각에 그런 드라마는 아마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저 개인으로선 그런 걸 만들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만들기 시작한 것들이 지금까지 제 영화들입니다. 이 사회에 팽배한 통념이나 이데올로기들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왜곡된 조각들이 아니라 제가 삶에서 그냥 맞닥뜨리는 조각들을 영화라는 통 안에다가 집어넣을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전 딱 떠올라서 멋있다 하는 건 안 썼어요. 똑같은 반복이니까. 처음엔 부정하는 식으로 영화를 찍었던 것 같아요. 예쁜 앵글은 다 사진, 미술에서 온 것 아닌가요? 일부러 그런 앵글을 부정하다보니 지금은 안 그러지만 처음엔 누군가 ‘왜 앵글을 그렇게 재미없게 잡느냐’ 그러더라고요. 골목 같은 것도 후진 데를 자꾸 그리느냐고 하고. 하지만 전 내가 아닌 건 일단 내가 아니라고 하고 넘어가자.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부정을 했어요.
부정을 하면서 부정을 통해 걸러진 조각들이 하나로 묶여지는 걸 느꼈는데 제가 패턴이라 말하는 거거든요. 반복, 차이, 모방. 그게 뭔지 몰랐어요. 그냥 처음엔 묶이니까 좋았어요. 묶이지 않으면 일루전(illusion)을 줄 수가 없으니까. 나쁜 일루전을 깨야 한다고 했지만 일루전 없이 스며들 순 없으니까. 그거 하다보니까 그런 패턴이 반복이 되더라고요. 그 반복을 의식하면서 사용하게 됐고요. 내가 무슨 이야기하다 이렇게….
제가 다닌 시카고예술대학은 박물관을 통과해서 가야 했는데, 거기 인상파 화가들 그림이 많아요. 어느 날 세잔의 유명한 사과 그림을 하나 봤는데. 그냥 정말 너무 좋더라고요. 달리 표현이 안 돼요. 다른 그림 봤을 때는 ‘응, 알겠어’ 했는데. 그게 어떤 거냐면 의도가 보이면서 작가의 손이 보이고요. 작가의 제스처가 보이고 그게 작가의 그림에 앙금처럼 남아 있어 지저분한 느낌인데. 세잔의 그림은 깨끗했고 완전했어요. 그게 첫인상이었어요. 영화하고 나서 세잔에 대한 책을 나중에 읽어보니까 제가 생각하는 단어랑 겹치는 것도 있고 그래서 지금까지 제일 좋아하는 화가고요. 대개 구상 뒤에 빈약한 추상이 숨어 있다면, 이 사람의 그림에선 추상이 바깥으로 나와 있고, 추상의 선들이 구상의 구조를 만들어줘요. 그런데 언뜻 보면 그게 구상이에요. 빈약한 추상의 도움 없이도 완전한 구상이 되는 거예요. 구상인데 더러운 게 뒤에 없어. 그게 너무나 예쁘더라고요.
별거 없고요. 조그맣고 예쁘고. 살던 집하고 일하던 화실을 가봤고요. 세잔의 옷을 만져보기도 하고. 그 사람이 말년까지 살던 동네인데 아이들이 미친 노인네라고 하면서 돌 던지고 그랬다는데 뭐랄까 거기 가서 힘을 좀 얻었어요. 세잔은 국전에 한번도 못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그는 그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예술적인 컨셉을 실천해냈는데 국전조차 안 내주니까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여러분도 반에서 시험문제 잘못 체크하면 화내잖아요. 세계에서 가장 예술적인 컨셉을 갖고 있다라는 걸 세잔 자신이 몰랐을 리가 없어. 그랬다면 그걸 어떻게 만들어. 그런 사람을 어떻게 국전에도 안 넣어주고. 너무 힘들었을 텐데 평생 죽을 때까지 그렸거든요.
cine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