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봄

2010. 4. 24. 23:55 from 카테고리 없음
산동네에 살게 된 이후로 산에 자주 간다.
어제는 비가왔는데 아빠가 새벽같이 산에 다녀와서는 비가와서 굵은 나무가 부러지고 쓰러진 모습, 파릇파릇 꽃과 새 잎들이 나는것, 그런 생명과 죽음의 교차가 너무나 신비하고 아름답다고 했다. 비가오면 자연은 한층 더 아름다워지는것 같다. 다음에 비가오면 산에가서 숲의 신비를 느껴봐야겠다.

동생 휴가나오고 해서 아빠가 산에 같이가자고 했고, '대성문'이라는 거의 꼭대기까지 가자고 했다. 동생은 오후 약속이 있어 시간 촉박하다고 대성문까지 가는 계획을 싫어했지만 네녀석 늦잠자는거 기다리느라 우리가 다 늦게 출발했는데 무슨말이냐고 내가 꾸지람했다. 못마땅하던 터라 꾸지람이 절로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오르막길과 돌짝길을 싫어하는것은 사실은 나였기에 얼마못가 심하게 지치고 뒤쳐져서 대성문보다 훨씬 가까운 '청담샘'으로 종착점을 급수정했다. 30분정도 올라가니 청담샘으로 올라가는 샛길이 나왔고 선두주자로 이미 빠르게 등산한 아빠와 동생이 기다리고있었다. 지친 엄마와 내 모습을 보고 쉬었다가라고 권했지만 쉬면 더 힘들다고 거절했다. 청담샘 샛길을 보니 어떤 산 봉우리같은것이 나타났고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잎사귀가 작고 파란 식물들, 진달래들을 보며 아빠는 끊임없이 감탄했고 넓고 평평한 바위가 나타나자 여기서 아빠게 매일 체조한다고 알려주며 자랑하듯 말하길 "내가 이렇게 매일 즐겁게 살고있는지 몰랐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살고계신지 몰랐네요."
지름이 4-50센치는 될법한 거대 나무가 쓰러진 길을 지나니 약수터가 나왔다. 물이 꽤 맛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매일 체조하는 바위에서 동생이 알려주는대로 스트레칭을 했다. 동생이 시키지 않은 구령까지 하며 뭔가 전문적인 방법으로 심장에서 먼 순서로 털고 땡기는 동작을 가르쳐주었는데 꽤 시원해서 깜짝 놀랐다. 아빠는 무슨 동작을 해도 어딘가 어설퍼서 엄마의 웃음을 샀다.

동생과 헤어진후 오후에는 중앙시장 근처의 목재소와 가구골목을 누볐다. 야외용 테이블과 의자, 실내용 의자와 테이블 등을 구경했다. 나는 미송과 자작합판을 좋아했다. 아빠는 학생시절부터 누볐던 곳이기에 종종 추억에 잠겼고 10년전에 갔었던 홍어찜 집을 발견해서 엄마와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그 집에 들어가고 말았다.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도저히 음식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지옥과 같은 냄새가 진동했고, 나는 밥상에서 좀 떨어진 구석에 자리잡고 앉았다. 어서 빨리 이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구석에서 양배추와 당근을 씹고있자니 아빠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아껴먹느라 천천히 드시고 계셨다. 몇 젓가락 드시는 시늉을 하던 엄마도 어느순간부터 내 양배추와 당근을 먹고있다. 아빠는 힘들게 일하시는 할머니들을 보면 고생하시던 친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짠해지시는데, 홍어찜 집 주인분께서는 85세의 손마디가 굵은 할머님이었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져서 엄마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감고 쉬고있는데 할머니께서 오셔서 뭔가 인생 얘기를 시작하셨고 아빠는 할머니 말씀하시는데 업드려있는 그 자세가 뭐냐고 갑자기 나를 매우 꾸중하셨다.

어쨌거나 처음 직장생활을 할때 상사가 홍어찜 먹으러 가자고해서 지독한 냄새에 한젓가락도 못드시던 아빠가, 두번째 갈때는 몇젓가락 드셔보시고, 다음에는 문득 생각나서 혼자 먹으러 가셨다고 하는 홍어찜이 이제는 음식중 최고라고 하시는데. 나에게는 태국에서 야코가 사온 두리안 캔디정도의 충격적인 음식이다. 외국인에게 김치가 이정도의 충격일까.

결국 엄마와 나는 오는길에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집에와서 밥을 먹었다.
Posted by eese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