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브라우니를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게 되었다. 어제는 감동의 연속이었는데 후무스의 궁극 레시피를 드디어 발견해 밀가루+우유식초+베이킹소다일뿐인 아이리쉬 빵과 함께 먹으며 그 맛에 모두 감동, 호두 브라우니와 하겐다즈 바닐라의 조화에 두번째 큰 감동을 했고 이쯤되자 우린 모두 자화자찬하며 이런 케익을 만들어내는 스스로에 도취되었다.
여간한 한정식집에 가서 된장찌게가 나와도 본인이 한게 더 맛있다며 맘에 안들어 하시는 까다로운 할머니처럼 이제 우리도 까페에서 마음놓고 브라우니 먹기는 다 틀렸다. 우리가 한게 언제나 더 맛있을테니까.
배불러서 떠난 백사실 산책 또한 의외의 감동이었다.
사실 산골주민인 나와 u에겐 일상적인 풍경이었지만 도시민인 t는 "저기에 새집이 있어, 나무에 새가 집을 지었어!" 하며 크게 감동했다. u는 관광객의 에베레스트 산 등정을 돕는 말없는 네팔 안내인처럼 능숙하고 묵묵히 우리를 인도했다. t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때면 u는 뒤로걷기를 시작한다던지 갑자기 전혀 다른 화제로 말을 돌린다던지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t 가 기분이 좋은 날에는 알록달록한 원피스같은것을 입고 좋지않은 날이면 눈에 띄지 않는 보호색의 옷을 의형제의 강동원 스타일로 입는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를 하다 이 만화가 떠올랐다. t가 즐기는 공작원스타일은 야구모자와 어깨가 네모난 헐렁한 자켓 + 딱 붙는 바지로 대개 쥐색이거나 카키색처럼 눈에 띄지 않고 주위배경에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색이다. u가 이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어, 그러고 보니 나 집에 안입는 김정일자켓있어.. 어깨가 네모낳고.. t가 좋아할것같아." 나의 예상보다 귀여운 자켓이었지만 그 옷은 마치 원래부터 t의 옷이었던 것 처럼 잘어울렸고 t가 매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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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 끝나고 아는분의 아는분 가회동 그림전시에 잠시 들렸다. '숲'이라는 주제로 그림의 대부분이 녹색이고 추상과 구상의 중간쯤 되는... 둥글둥글한 그림들. 그런데 그녀의 예전 그림 카탈로그를 보니 원색과 보색을 맛깔나게 쓰고 마치 앤디워홀 친구 바스키아 그림을 연상케 하는 파워풀하고 재치있는 그무엇이 있었다. "원래 남자, 여자, 인간관계랑 사람 이런거 좋아해서 이런 재미난 그림 그리던 사람이었는데.. 결혼하고 마석으로 이사가더니 이렇게 되버렸어.ㅎㅎ" 라는 설명. 마석이란 양평쪽의 외딴 시골마을이던가. 어떤 녹색의 일렁이는 뭔가로 가득찬 그림 한구석에 사람 머리가 두개 있고 그게 자신과 남편이라는. 외딴곳에 사는 시골사람의 마음 이해할 수 있다. 뭔가 사실적이면서 공감이 가는 변화이다. 가회동이라는 동네는 삼청동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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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놀이